세상 살다보면
보기 싫은 데도 자꾸 봐야 하는 사람이 있고,
보고 싶은 데도
죽으라 보기 힘든 사람도 있다.
18년간 선생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학생들과
인연을 맺었다
끊기기를 반복했던가?
그 중에서 기억에 남고
지금 쯤 무얼 하고 살까 하고 궁금해 하며
꼭 한 번쯤은 다시 만나보고 싶은
학생들이 있다.
지난 주 12년만에 만났던 제자도
그런 학생 중 한명이었다.
그 제자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1999년 12월이었다.
새별이를 낳으러 아내가 서울에 간 때가
바로 그 때 였으니 말이다.
맑고, 여리고, 감수성 풍부했던 그 아이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게
국군간호사관학교에 들어갔을 때
무척 놀랐었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제복을 입고
학교로 홍보를 나왔을 때도
그 제복이 왠지 어색해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제자를 거의 매해 보며
그 제복과 짧게 자른 단발머리가
어울리는 게 아닌가 착각을 할 때 쯤
제자는 내게서 사라졌다.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아니 풍문에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식은
학교를 그만 두고
힘들어 한다는 얘기였다.
그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지만
어떻게 사는지
무얼 하고 사는지
살아는 있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삼일여고에 왔을 때 처음 만나는 학생들과
여러가지 애피소드를 남겼지만
그 어떤 학생 못지 않게
그 제자와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게 보내오는 편지와 일기 비슷한 것들이
굉장한 감수성을 가지면서도
문학적인 면이 강하여
그것들을 읽는 것이 꽤나 흥미가 있었고, 재미 있었던 기억.
작고 귀여운 모습으로
슬쩍 와서는 나를 찌르거나
내 주변을 맴돌고 있는 느낌
가끔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동정심을 유발하는 모습까지
귀여웠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는 선생이었으면 하는 마음.
졸업 후에도 가끔씩 볼 수 있는 친구같은 사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가끔은 편지를 받고 재미있었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훗훗 할 수 있는 마음.
힘들고 어려울 땐 선생님 소주 한 잔 할까요 하는 말을 전해 들을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의 선생이 되고 싶었고,
졸업 후 몇 년간은 그랬던 것 같다.
제자가 소식을 끊고 사라지기 전에는......
도저히 연락할 길이 없어지기 전에는......
그런 제자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연락이 되어 만나게 되면서도
그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반 정도였는데
그런데 그 제자가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런 인연이 있구나.
살아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