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양말을 꺼내 신으며
양말 안에 늘어진 몇 가닥의 실 때문에
발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간신히 발을 집어넣고 보니
새벽이가 떠나기 전에
내 생일에 선물해준 양말이다.
새벽이 인생 17년에
아빠 생일에 처음으로 선물을 한
양말 두 컬레.
예전에 여자 친구 만나며
생일을 챙기는 모습에서
저 놈은 언제 엄마, 아빠 생일도
생각하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놈이 내 생일에 선물을 한 사건은
말은 안 했지만
내겐 참 큰 사건이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 부부의 생일에 대한 견해는 확고했던 것 같다.
아이들 생일에 단 한 번도
생일 선물을 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 생일이라고
선물을 기대한 적도 없었다.
다른 집들과 달랐던 것은
어린이 날도
단 한 번도 애들 비유 맞추며
뭔가 사주거나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생일은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부모에게 감사하며 지내는 게 맞다는 생각.
어린이 날이라고 따로 의미를 두며
과도하게 아이들 비유 맞추는 게
옳지만은 않다는 생각.
그런 날들 말고
뭔가 필요한 게 있거나
해주어야 할 게 있다면
그때그때 선물하면 된다는 생각.
우리 부부가 단 한 번도
발렌타인이나 화이트데이 같은
상업적인 날을 서로 챙긴 적이 없었다는 것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
그래도, 새벽이가 처음으로
생일 선물을 해주었을 때
많이 기뻤고 대견했던
그 행복했던 마음을 생각한다면
그간 애들에게 너무 원칙적으로
너무 딱딱하게 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떠난 새벽이가
마지막으로 주고 간 선물.
양말.
좋은 건 아니라 신기가 상그러워
발가락을 이리저리 놀려야 했지만
그래도, 양말을 신으며
놈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놈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무슨 마음으로 생일 선물을 준비했을까?
단 한 번도
놈에게 생일 선물을 해준 적이 없는데
일부러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섭섭한 마음이 컸던 것은 아닐까?
오늘 새벽이가 선물해준 양말을 신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신고 있는 양말을 보며
새벽이를 생각한다.
새벽이가 보고싶어진다.
이런저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