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저런 이야기

바보 노무현

노무현을 처음 알게된 것은 5공 청문회에서 스타 국회의원이 되면서이다.
5공 비리에 대해 시원하게 질문을 해대던 그의 모습이 신선했고, 사람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리다.

그런데,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아마도 교직 진출 때문에 투쟁할 때 그를 방문하여 협조를 구하려고 했는데
대학생인 너희들이 뭘 아느냐는 태도를 보여 그에 대한 이미지를 처음으로 구겼던 적이 있었다.
스타 국회의원이 그도 결국은 다 같은 정치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로 노무현을 생각하게 된 것은 90년 3당 합당 때이다.
김영삼에 의해 픽업되어 국회의원이 된 그가 김영삼을 따라 민자당에 들어가지 않고,
김영삼 슬하를 박차고 나왔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에 대한 호감이 이어지게 되었다.

세번째로 노무현에 대해 생각한 것은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지역감정, 지역당을 타파하기 위해
지역당인 신한국당, 한나라당의 텃밭인 부산에서 국회의원으로 그리고 시장으로 나와
연거푸 떨어질 때였다.
아마 그는 그 일로 인해 자신에게는 피해가 돌아가도 원칙과 올바름을 추구해나가는 사람으로 각인이 되었고,
그래서,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바보 노무현으로 통했다.

네번째로 노무현을 다시 보게 된 것은 그가 민주당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 
예상을 뛰어넘어 선전을 하고는 드디어 이인제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이다.
당시로서는 정말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었고, 당시까지 그나마 좋은 정치인으로 기억되던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된 일을 반겼던 일이 생각난다.

다섯번째로 노무현을 다시 보게 된 것은 그가 정문준과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결국 통합 후보로 선정된 때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에 놀랐으며, 후보로 선정해놓고 그를 끊임없이 흔들어대던
민주당 사람들에게 엄청난 펀치를 날린 사건이었다.

여섯번째로 노무현을 다시 보게 된 것은
그가 골통 언론의 방해와 반대, 그리고 저주를 뒤로 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선거 당일 조중동이 퍼부었던 정문준과의 후보 단일화 파탄의 저주가
오히려 그의 당선에 일조했다는 사실을 개표 결과를 보면서 확인했을 때
그건 정말 큰 전율이었다.

일곱번째로 노무현에 대해 생각나는 것은
그가 한나라당과 말도 안 되는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이고,

여덟번째는 그가 탄핵 되었을 때이다.
그런데 그는 다시 살아났다.

아홉번째는 열린 우리당을 만들고,
또 과반수 넘는 지지를 통해 뭔가 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이다.

하지만 그는 정권 장악 이후 보여 준 모습 
자체는 실망에 실망을 낳게 되었고,

드디어 마지막 열번째 그의 기억 나는 모습은
한미 FTA를 무지막지하게 밀어부치던 모습이다.
내가 아는 한에서, 우리가 아는 한에서
그는 그럴 수가 없는 
그런데 그는 밀어부쳤다.

아마도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할려고 했을 때도
그래도 믿어보려고 했던 것 같은 데
한미 FTA 때 완전히 그에 대한 실망은 절망을 넘어 분노가 되었다.

그런데 그가
어제 전교조 집회에 가기 위해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본 뉴스 특보를 통해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그 답다.
누구도 말릴 수 없었던 독불 장군. 그 답다. 
그 답게 왔다가 그 답게 살다가 그 답게 갔다.
그의 죽음이 결코 자살로만 치부될 수 없지만

그에게 묻고 싶다.
그만큼 도덕적인 걸 강조했으면
그만큼 도덕적이어야 한 것 아니냐고.....

그에게서 배운다.
말한데로 하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여러번의 충격을 안겨주고 교훈을 준 사람.
노무현.
바보 노무현.

그에 대한 그간의 애증을 떠나
이미 차가운 사자가 된 그에게
명복을 빈다.